우리 사회는 유례없는 압축적 근대화의 길을 걸으며 급격한 문화 변동을 겪었다. 개인·자유·평등 같은 근대적 가치관이 지속적으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반면, 권위주의와 남성 중심주의 그리고 학연·지연·혈연 같은 비근대적 가치가 여전히 공존하는 게 현실이다.

문화 다원성을 갈구하는 시대적 목소리도 다양한 방식으로 표출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편으로는 수용하고 한편으로는 극복해야 할 근대적 가치는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모색하기 위해 근대성의 한계와 가능성을 비교문화적 관점에서 검토하는 강연이 진행되고 있다.

문화과학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문화의 안과 밖'이 지난 1월부터 한남동 블루스퀘어 북파크 카오스홀에서 <동서 문명과 근대>를 주제로 총 50회차 강연을 진행 중이다.

<동서 문명과 근대>는 오늘의 우리 삶을 규정하고 있는 근대정신과 근대적 세계의 성격을 비교문화의 시선으로 짚어보는 강연 시리즈이다. 지난 3월31일을 끝으로 11회차에 걸친 1~2섹션 '사상의 근대성' 강연이 마무리됐다.

근대화의 현주소를 짚다
현시점에서 동서양의 근대성을 짚어보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전체 강연 프로그램의 기조 강연이라 할 수 있는 1강 '동양, 서양, 근대 – 일치와 차이' 강연에서 “동아시아는 이제 강대국에 맞설 수 있는 지역이 되었고 앞으로 어떤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고 진단한 뒤 “오늘날 세계가 불안과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펼쳐질수록 근대성의 한계와 새로운 실천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그 의미를 밝혔다.

첫 섹션인 '근대성 이론과 그 비판(1~5강)'은 동서양 근대의 성과와 문제를 검토하고 그 차이를 짚어보는 데 집중했다.

서양 사상이 개인, 이성, 자유 등 합리주의적인 특성을 보인 데 비해 동양은 공동체와 그 속에서 통용되는 윤리, 규범 등을 중시했고 이런 사상의 접근법이 동서양 근대화 과정에서 큰 차이를 보인 것이다.

네이버의 강연 프로젝트 '열린연단:문화의 안과 밖', 강연 현장 [사진=네이버]

주목할 만한 것은 근대 사상의 전환이다. 임봉길 강원대 명예교수는 4강 '전통 사회와 근대 문명' 강연에서 구조주의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를 거론하며 "서구 근대성이 타 문화를 재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특히 인간 사회에 나타난 '교환'과 '호혜' 개념이 집단, 나아가 각 문화권을 형성하며 문화적 우월을 가릴 수 없는 각각의 모습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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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근대화의 반성과 성찰… '근대' 극복 DNA
두 번째 섹션 '근대성과 동양(6~11강)'에서는 동아시아, 특히 한중일의 근대적 경로를 짚어보는 데 주목했다.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은 문화적·사상적 관점에서 '유교 특히 주자학으로부터의 탈피' 과정이었음을 되돌아보며 오늘날 어떤 의미로 갱생할 수 있을지에 주목했다. 서구 중심 근대사상을 벗어나기 위한 요소를 동양 전통이 강조해온 공동체주의, 윤리, 덕의 개념 속에서 찾는 비교문화적 관점에서의 공존 방법도 모색했다.

결국 수백년 이래 이어져 근대화 경로의 끝자락에 선 우리 사회의 현재적 의미를 짚기 위해서는 세계 속의 한 구성으로서 역사를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자문위원인 이승환 고려대 교수는 “우리 사회가 서구에서 수용한 근대적 가치관이 변용돼 뿌리내렸고 전통의 가치관이 편의주의적으로 왜곡되어 활용되고 있다”라고 진단한다.

그는 “숨 가쁘게 달려온 근대화의 과정에서 차분하게 스스로의 행로를 점검해볼 여유를 갖지 못했다”라면서 “서구 근대성의 성과를 긍정적으로 수용”하는 동시에 “서구 근대성에 내재된 한계를 극복하는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한편 열린연단 <동서 문명과 근대> 강연은 4월부터 3~4섹션 '과학기술의 근대성' 강연을 이어간다. 강연자로는 우리나라 1세대 과학사학자 박성래 한국외대 명예교수, 손화철 한동대 교수, 김홍종 서울대 수학과 교수 등이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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