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 중관춘 메인도로 [source=wikipedia]
중국 베이징 중관춘 메인도로 [source=wikipedia]

90년대 개혁개방 이후 2010년대 들어 성장세가 둔화된 중국의 새로운 돌파구는 다름 아닌 ‘창업’이다.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혁신 창업에 주목한 중국 정부는 창업가 육성 및 지원에 사활을 걸었다. 알리바바와 샤오미의 고향인 베이징 중관춘(中关村/Zhongguancun)은 그 전초기지이자 심장부다. 

베이징의 북서쪽 외곽 지역에 자리 잡고 있는 중관춘은 행정구역상으로는 베이징 시내지만 중심부에서는 다소 거리가 있다.

이곳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후반이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스토리에 자극 받은 중국정부는 중관춘을 하이테크 과학 산업단지로 만들기 시작했다.

중관춘 지역을 5개 구역으로 나눠 도로를 확장하고 고층 빌딩을 줄지어 올리면서 혁신을 위한 물리적 토대를 마련했다. 뒤이어 중국이 지적재산권을 보유하고 있거나 기술 수준과 시장 전망성이 높은 분야를 중심으로 소프트웨어 산업을 집중 육성시켜 나갔다.

이 결과 90년대 초반 종합 첨단기술 생산단지인 샹띠정보산업단지가 만들어졌고, 99년까지 6,700여개의 기업이 중관춘에 둥지를 틀었다. 이즈음 중관춘 기업들이 기록한 총매출액만 864억 위안(당시 환율 약 12조원)에 달했다.

인근 소재의 대학과 대학원 출신 고급인력들은 중관춘의 핵심 동력원이었다. ‘중국의 MIT’로 불리는 중국 최고의 공대 칭화대와 베이징대, 인민대 등을 포함해 68개 대학·대학원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서 배출되는 졸업생들만 연간 수십만 명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중국과학원 산하 연구소 40개와 중앙정부의 각 부 및 위원회 산하 연구기관 71개, 베이징시 산하 연구기관 27개, 대학부설 연구기관 269개도 포진해 있다.

실제로 이 지역 대학가를 방문해보면 엄청난 창업 열기를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도서관과 강의실은 물론이고 심지어 잔디밭 곳곳에서 삼삼오오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고 토론을 나누는 학생들을 만날 수 있다.

통학 비율이 높은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 대학생들은 100%에 가까운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학생들은 기숙사 안에서도 연구에 몰두한다.

이곳에 모여든 과학기술 인력들은 중관춘 정신의 가치 체계와 행위 패턴을 익히면서 성장했다. 이성적인 사고와 담대한 창의력,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와 결단력 등이 그것이다. 중국 특유의 애국주의 위에 이 같은 정신이 골고루 융합됐고, 이는 중관춘 지역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강력한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결정적으로 중관춘이 ‘포스트 실리콘밸리’의 지위를 넘보게 된 시점은 2015년이다. 리커창 중국 총리는 그해 3월 전국인민대표회의에서 ‘대중창업 만중혁신’을 기치로 내세웠다. 

누구나 창업하고 누구든 혁신을 이뤄내자는 의미로, 창업에 대한 중국 정부의 각오와 결심 그리고 자신감을 대내외적으로 나타내는 상징적 문구였다.

이를 기점으로 많은 변화가 이뤄졌다. 중국 정부는 회사법 개정을 통해 등록자본금 및 기타 등기 관련 사항을 완화해 창업 진입 문턱부터 대폭 낮췄다. 창업에 소요되는 최소 기간은 1개월에서 3일로 단축시켰다.

창업 시 준비해야 할 서류도 26종에서 10종으로, 서류 작성을 위해 필요했던 데이터 역시 기존의 166개에서 74개로 간소화했다.

창업을 방해하는 요소는 적극적으로 규제했다. 독점이나 시장 지배력 남용 같은 것들에 대한 규제안이 대표적이다. 창업자들의 지속가능성도 고려했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고 은행 등을 통한 창업 관련 재정 지원을 확대했다. 연구개발비 추가공제와 인큐베이터 우대혜택, 초기 기업 투자자 세제해택 등도 함께 이뤄졌다.

그렇게 현재 중관춘에는 5개의 슈퍼유니콘(기업가치 100억 달러 이상)을 포함해 70개가 넘는 유니콘 기업이 자라났다. 하루 평균 1.7개의 창업 프로젝트가 이뤄지고, 중관춘에서 사무실 계약을 하는 스타트업은 매주 20곳이 넘는다.

중관춘은 종종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비교되는데, 두 지역은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이 공존한다. 대학 출신 고급 인력들의 도전 정신을 바탕으로 발전해왔고 많은 젊은이들이 저마다의 아이디어를 가지고 시장에 도전장을 던지고 부딪히고 깨져가며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은 같다. 

물론 실패로 귀결되는 경우가 더 많지만, 그 과정의 산물들은 산업 전반의 성장을 가져왔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적 발전에 기여했다.

지역 인프라 조성과 인구 유입이 가파르게 이뤄지면서 매매가·임대료와 물가가 크게 상승한 것도 공통점이다. 중관춘과 실리콘밸리의 거주지와 사무공간은 갈수록 좁아지면서도 가격은 뛰는 반비례 현상이 거듭되고 있다.

분명한 차이점은 정부의 입김이라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세제 혜택과 인프라 지원은 미국도 중앙정부와 주정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중국은 그 스케일이 남다르다. 

상대적으로 신속한 정책적 의사결정이 경쟁력인 공산당 1당 체제는 청년 창업가들에게 정부가 직접 무상으로 창업 자금을 지원하거나 인근에 소재한 다양한 창업자금지원센터를 통해 민간 투자자를 연결시킨다, 

확실한 아이디어와 의지만 있다면 중관춘 어디에서든 창업 기본교육부터 융자, 상업모델, 합병, 상장 등 창업에 관련한 무료교육을 받아볼 수 있다. 여기에 등록자본금 최소 요건을 폐지하고 출자 방식도 자율화함으로써 단돈 1위안만 있어도 창업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다만 이렇게 눈부시게 발전 중인 중관춘이 향후 실리콘밸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시각은 아직까진 회의적이다.

중관춘의 기술력과 풍부한 인력은 분명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했지만 종합적인 연구개발과 벤처투자 시스템 면에서는 실리콘밸리에 견주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또 기술 그 자체의 가치보다 기술의 시장가치를 중시하는 실리콘밸리와 달리 중관춘의 창업가들은 연구 자체에 몰두해 시장의 수요를 경시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이는 곧 중관춘이 가진 숙제이자 동시에 실리콘밸리의 높은 벽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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