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스타트업 투자 시점…‘지금이 적기’ vs ‘그래도 아직은’
한국에 스타트업 붐이 일어난 지 10년이 돼 가는 시점이다. 10년 간 우후죽순 창업이 이뤄지고 투자가 줄지어 이뤄지며 불이 붙은 것 같은 분위기도, 돈줄이 끊기고 폐업과 도산이 난무하며 얼어붙은 것 같은 분위기도 모두 겪었다.
그사이 수많은 사건과 변화가 일어났고 이는 현재진행형이다. 지금은 부정적인 외부 요인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는 상황이지만 동시에 꽃피는 봄날이 머지않았다는 신호도 엿보인다. 스타트업 투자를 둘러싸고 적기가 도래했다는 주장과 아직은 조금 더 기다릴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충돌하는 시점이다.
2010년대 후반까지 승승장구하던 스타트업 업계는 전세계적 재앙인 코로나 팬데믹을 만나면서 급격하게 무너졌다. 벤처캐피탈협회에 따르면 가파르게 성장하던 벤처투자 규모는 2021년 이후 뚜렷한 감소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특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이 극에 달한 지난해에는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끊임없이 하락했다. 한국에서는 느닷없이 비상계엄 사태가 발발하면서 최근 탄핵이 마무리되기까지 상당 기간 고통스런 시간이 이어졌다.
스타트업 투자 시장을 회의적으로 바라보는 이들은 이같은 이슈들이 아직 완전히 해소되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한 차례 위축됐던 금융권의 투자가 쉽사리 살아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제결제은행의 규제 기준인 ‘바젤3’가 은행자본 건전화 개혁을 목적으로 2020년 하반기부터 도입되고 은행 자산을 신용도와 위험에 따라 분류하고 위험이 높을수록 가중치를 적용하는 위험가중자산(RWA)이 적용되면서다. 실제 2023년 신규조합 조합원 비중의 30.5%를 차지했던 금융기관은 이듬해 16.8%로 반토막이 났다.
동시에 투자 형태의 변화는 점차 안전한 방식으로 옮아갔다. 2020년만 해도 초기기업과 후기기업에 대한 투자 비중은 각각 30% 가량으로 비슷했지만, 2024년에 이르러서는 초기기업이 20% 밑으로 하락한 반면 후기기업은 45%를 넘어섰다.
투자 비중이 벤처기업 후기단계에 집중되고 있는 현상이 뚜렷하다. 높은 밸류로 투자를 유치한 대형 스타트업이 좀처럼 이익을 창출하지 못하면서 투자자들의 리스크 방어 심리가 두드러지는 모양새다.
기술특례상장으로 우회하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 또한 주목할 지점이다. 전체 코스닥 신규 상장기업에서 특례상장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017년 10% 미만이었으나 지난해 50%를 훌쩍 뛰어넘었다. 그나마도 이 기업들의 공모가와 현재 주가를 비교하면 평균적으로 30~40% 정도의 하락세를 보이는 중이다.
코로나19 시기를 관통하며 기업공개(IPO) 시장이 침체되면서 기업들의 시가총액규모와 공모금액은 점점 떨어지고 있으며 코스닥 지수는 박스권을 형성하고 있는 등 투자시장 여건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흐름이 저점을 찍고 반등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난해 3/4분기 기준으로 신규 투자 규모는 4조6286억원, 투자유치 기업은 1,829개사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년인 2023년에 비해 다시 상승한 수치다.
CB인사이츠의 2025년 1분기 벤처 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벤처투자 유치 규모는 2022년 2분기 이후 최고 수준인 1,210억달러로 급증했다. 물론 아직까지는 오픈AI를 위시한 AI 기업들에 투자가 집중되는 경향이 강하지만 핀테크와 리테일, 디지털 헬스케어 등 다양한 분야에서의 투자도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눈앞의 변수들을 넘어 보다 넓은 기준으로 시장을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코로나19 이래로 강력한 침체기가 온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넓게 보면 단기간의 부침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2005년만 기준으로 한국의 연간 벤처투자 규모가 1조원 수준에 불과했으나 지난해 12조원 가량으로 늘면서 20년만에 12배 성장했으며, 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유니콘도 10개 이상 등장했다.
세부적으로 살펴봐도 AI를 비롯해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바이오 등 주요 산업 투자는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으며 글로벌 VC로부터의 기회도 과거 대비 훨씬 많이 열려 있다. 단기적인 요인들에 위축되지 말고 투자유치 환경이 계속해서 나아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만 앞으로도 투자 시장의 장기적인 우상향을 도모하려면 기업들 스스로 내실을 다지면서 외부 이슈들에 대응력을 갖추는 노력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될 것으로 보인다. 투자자들의 움직임은 갈수록 민감하게 이뤄지는 만큼 영원할 것만 같아 보이는 AI와 같은 분야 역시 언제 신기루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