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매 대금 플랫폼 직접 관리 방식 수정 불가피

지난해 8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티몬·위메프(티메프) 피해 판매자와 소비자들이 '검은 우산 집회'를 열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지난해 8월1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금융위원회 앞에서 티몬·위메프(티메프) 피해 판매자와 소비자들이 '검은 우산 집회'를 열고 피해자 구제를 위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명품 플랫폼의 대표 주자 ‘발란’이 사업 10년 만에 결국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 대대적인 TV 광고를 포함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발판으로 승승장구했으나 쌓이는 적자를 견디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는 한 기업의 사업 실패를 넘어 국내 전자상거래(e커머스)의 구조적인 문제가 드러난 것이 주목해야 할 포인트다. 지난해 업계를 뒤흔들었던 이른바 ‘티메프’ 사태의 연장선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발란의 이상 징후가 드러난 것은 지난 3월 파트너사 정산 지급을 일시 보류하면서다. 물론 업체는 일반 소비자에게 금전적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고 미지급된 상거래 채권 규모도 월 거래액보다 적은 수준이라고 수습에 나섰다.

이어 쿠폰·광고비 등의 비용을 구조적으로 절감해 흑자 기반을 확보한 상태라고 밝혀 투자자와 소비자들을 안심시키려 애썼다.

하지만 불과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발란 측은 계획했던 투자 유치를 일부 진행했으나 당초 예상과 달리 추가 자금 확보가 지연돼 단기적인 유동성 경색에 빠지게 됐다고 밝히며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했다고 발표했다. 

파트너들의 상거래 채권을 안정적으로 변제하고 플랫폼의 지속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문제는 결국 자금 흐름이 막히면서 누적된 적자다. 2023년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발란은 현재 완전 자본잠식 상태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해 매출이 392억원이고 영업손실은 99억원, 자본총계는 -77억원으로 확인됐다. 

발란은 기업회생절차 과정에서 미정산 파트너들을 만나 사태에 대한 사과와 함께 대금 변제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기준으로 발란의 상거래 채권 규모는 190억원에 육박하고 이중 미정산 대금은 180억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발란은 서울회생법원으로부터 인수합병(M&A) 추진 허가를 받고 조기 경영정상화와 사업 안정화에 속도를 낸다고 밝혔지만 주변의 기대감은 높지 않다. 티메프 사태 역시 1년이 다 돼 가지만 해결된 부분이 거의 없기 때문에서다.

대규모 정산 지연으로 1조원이 넘는 피해를 본 티메프 입점업체들은 지금까지 한 푼도 받지 못한 상태다. 티몬 역시 현재 인수합병(M&A) 절차를 밟는 중인데, 회생계획안이 받아들여지더라도 변제율은 0.8% 안팎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변제 금액이 이렇게 소규모에 그칠 경우 상황이 어려운 업체들은 올해를 못 넘기지 못할 수도 있다.

소를 잃었으면 외양간이라도 고쳤어야 하는데 그것도 사실상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 정산 주기와 기준에 대한 제도적인 손질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지만 국회에서 보여주기식 법안 발의만 쏟아졌다.

그간의 정치적 이슈가 워낙 크긴 했지만 해당 법안을 심의하고 의결하지 못한 것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책임자 처벌 등의 단죄와 피해자 구제 역시 거북이 걸음 중이다. 티메프 모기업인 큐텐의 구영배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은 두 차례나 기각됐고 재판은 지난달에 와서야 시작됐다. 연내 1심 판결이 이뤄질지도 미지수다. 

발란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운데 4월1일 서울 강남구 발란 본사가 있는 공유오피스 로비에 '발란 전 인원 재택근무'라고 적힌 안내문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발란이 서울회생법원에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한 가운데 4월1일 서울 강남구 발란 본사가 있는 공유오피스 로비에 '발란 전 인원 재택근무'라고 적힌 안내문이 놓여있다. [사진=연합뉴스]

궁극적으로는 티메프와 발란 등이 가진 구조가 경영 위기 시 정산금 유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문제 예방을 위한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판매 대금을 플랫폼이 직접 관리하는 방식에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현행 제도는 오프라인 대규모 유통업자에 대해서만 판매 대금 정산기한을 규정하고 있을 뿐 전자상거래·PG사에 대한 규제는 없다시피 한 상황이다. 

해외 사례를 참고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미국은 판매대금 정산의 투명성과 안전성을 높이기 위해 플랫폼이 아닌 결제대행사 또는 에스크로 계좌를 통해 정산금을 분리 보관한다. 페이팔이나 스트라이프 등이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미국 연방거래위원회는 정산금 횡령이나 고의적 지연 행위를 사기 또는 부정거래로 간주해 처벌 수위가 상당히 강력하다.

유럽연합(EU)은 지불서비스지침(PSD2)을 통해 전자지불 및 자금 이체에 대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 판매자 자금은 별도 계좌에 보관해야 하고 플랫폼이 유동성 위기로 해당 자금을 유용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된다. 

일부 국가에서는 구체적인 정산기한을 법으로 명시하고 있는데, 일례로 프랑스는 정산기한을 최대 30일로 제한하고 이를 위반하면 지연이자와 벌금을 부과한다. 독일은 플랫폼 자금을 트러스트 계좌에 별도 보관하도록 해서 유용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

결국 우리나라도 전자상거래와 PG사에 대해 판매대금의 예치·신탁·지급보증보험 가입 등 별도 관리 의무를 강화하고 해당 대금에 대한 양도담보 제공 및 제삼자의 압류·상계를 금지하는 방향으로 관련 법령을 개정하는 등의 변화가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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