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ISSU 리포트] ⑤ 메타버스 안의 또다른 나, 가상-현실 오가며 즐기는 MZ세대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사진=게티이미지뱅크]

멀티 페르소나는 ‘부캐’라는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우리 앞에 등장했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예능 <놀면 뭐하니>의 유산슬, EBS 직원 펭수, 유튜브 <피식대학> 등이 그 예다. 우리에게 멀티 페르소나는 유명 연예인들이 본인이 아닌 척하는 일종의 ‘역할극’으로 시작해 대중은 연예인이 만든 ‘또 하나의 인격’을 재미있게 소비한다. 

하지만 이러한 부캐놀이는 단순히 시청자들이 그저 ‘웃는 것’에서 끝나지 않았다. 대중은 ‘부캐’를 적극적으로 소비하며 제작자들이 만든 세계관에 함께 참여하기 시작했다. 연말 시상식은 유산슬을 축하 공연 초대 가수로 초청했고, 사람들은 펭수의 굿즈를 구매하며 태연하게 역할극에 동참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가상세계는 더 주목받는 추세다. 현대인들은 현실의 제약과 압박에서 벗어나 가상세계에서 내 안의 ‘진짜 나’, ‘더 진짜 나’를 찾아가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는 고대 그리스 연극배우가 쓰는 가면(Persona)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상황에 맞춰 여러 가면을 바꿔 쓰듯 다양한 외적 인격을 갖는 다중적 자아를 말한다.

페르소나를 개인이 사회적 요구에 적응하도록 하는 매개체로 정의한 스위스 심리학자 칼 융에 따르면, 멀티 페르소나는 개인화된 다매체 사회를 사는 현대인들에게는 큰 변화의 흐름이다.

디지털 시대에 타인과의 네트워크가 복잡해지면서 사람들은 온라인상에서 보이는 모습과 오프라인에서의 모습을 구분 짓고 다양한 상황에 맞게 타인에게 보이고 싶은 자신의 정체성을 선택하고 있다.

멀티 페르소나가 가장 쉽게 나타나는 곳은 소셜미디어(SNS)다. 특히 2030세대는 다양한 SNS 플랫폼들을 오가며 여러 모습을 보여주는데 거리낌이 없다. 심지어 한 플랫폼 내에서도 여러 계정들을 만들어 상반되는 라이프 스타일과 정체성을 보여주기도 한다. 

인스타그램에서 모두에게 공개하는 계정 일명 ‘본계’와 내가 허락한 사람만 접근할 수 있는 ‘부계’가 대표적인 예다.

많은 20대들은 ‘본계’에서는 잘 알지 못하는 타인들에게 다채롭고 적극적인 자신의 일상 속 하이라이트를 공유하는 반면, ‘부계’에서는 사적인 일상과 감정, 나만의 취미 등을 공유하며 본계와는 상반되는 분위기의 나를 기록하고 있다.

[source=globalwebindex]
[source=globalwebindex]

시장조사기관 글로벌웹인덱스(GlobalWebIndex)에 따르면, 유저 한 명이 보유한 SNS 계정은 평균 8.1개로 인터넷 유저 중 98%가 SNS 유저다. 다수의 계정과 플랫폼으로 다양한 자아를 그려내는 멀티 페르소나 현상은 어쩌면 이미 너무 ‘익숙하고 당연한’ 것이 된 셈이다.

현실의 나를 선별적으로 보여주는 SNS를 넘어 현실이 배제된 온라인 게임이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커스터마이징 한 아바타로 완전히 새로운 페르소나를 보여주려는 경향으로 확대되고 있다. 

◆온라인 게임도 메타버스였어
멀티 페르소나는 메타버스와 함께 갑자기 생겨난 현상이 아니다. 1세대 SNS 싸이월드를 비롯한 대부분의 SNS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을 선택적으로 담아낸 ‘소셜’ 페르소나를 형성하고, 아바타, 방 꾸미기, 피드 꾸미기 등을 통해 타인과 소통해왔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스크린을 마주하며 소통하게 된 비대면 상황이 이어지며 오프라인을 대체할 수 있을 만큼 실시간 온라인 플랫폼과 메타버스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며 멀티 페르소나는 가상세계로 확장되었다. 

현실 속 사람들을 이어주던 SNS와는 달리 시공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를 구현할 수 있는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유저들은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고 가상화폐를 통해 시장경제를 형성하기도 한다. 

‘메타버스’라는 용어가 주목받기 이전부터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온라인 게임은 가장 단순하면서도 대표적인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높은 자유도를 자랑하는 MMORPG는 다른 유저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할 수 있는 오픈 월드를 통해 하나의 사회를 형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메타버스 시대에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유저들은 게임 속에서 새로운 커뮤니티를 형성하며, 아바타 커스터마이징 및 게임에 필요한 다양한 아이템들을 창작하고 거래하며 독자적인 시장을 형성하기도 한다. 

게임 속 시장경제는 현실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로벅스’라는 가상화폐가 존재하는 유저 참여형 게임 ‘로블록스(Roblox)’는 유저들이 직접 아이템을 만들어 판매하며 수익을 창출하고, 명품 브랜드(구찌)가 로블록스에서 쓸 수 있는 가방을 아이템으로 발매하는 콜라보를 선보이기도 했다. 

동물의 숲은 온라인 초대와 실시간 소통기능을 추가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닌텐도코리아 유튜브 캡쳐]
동물의 숲은 온라인 초대와 실시간 소통기능을 추가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다. [닌텐도코리아 유튜브 캡쳐]

지난해 선풍적인 인기를 이끈 ‘동물의 숲’도 주목할 만하다. 2020년 상반기 ‘모여봐요 동물의 숲’은 온라인으로 친구를 초대하고 실시간으로 만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팬데믹 상황에 비약적인 성공을 거두며 10여년만에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인기 열풍에 함께한 대학생 권수영(24)씨는 “코로나 이후 오프라인 만남이 어려워졌는데, 게임을 통해 서로의 취향대로 꾸민 섬에 놀러가며 오프라인 못지 않은 색다른 만남의 경험을 가졌다”며 게임 플레이 자체보다는 온라인에서 실제 친구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큰 매력으로 뽑았다.

‘배틀로얄’이라는 전투형 게임 중심이었던 ‘포트나이트(Fortnite)’는 메타버스가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무대가 설치된 광장, 미니게임이 가능한 농구장 등이 존재하는 소셜 모드의 ‘파티로얄’ 맵을 중심으로 더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단순히 아이템을 발매하는 협업에서 나아가 게임 속 광장에서 실제 아티스트의 콘서트를 개최하는 것으로 유명세를 얻었다. 마시멜로우의 버츄얼 라이브 콘서트를 시작으로, 트래비스 스캇, 아리아나 그란데 등 세계적인 스타들은 포트나이트 속에서 자신을 똑닮은 아바타의 모습으로 공연을 한다. 

포트나이트 [사진=에픽게임즈]
포트나이트 [사진=에픽게임즈]

대표적으로 래퍼 트래비스 스캇의 콘서트는 약 1200만명이 넘는 접속기록을 세웠고, 유저들은 자신의 아바타로 무대와 맵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실시간으로 다른 접속자들과 함께 공연을 감상할 수 있었다.

오프라인 콘서트에 버금가는 경험을 선사한 버츄얼 콘서트는 현실과 온라인이 완전히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치 평행세계처럼 기존의 현실을 확장시키고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될 수 있는 메타버스의 무궁무진한 발전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다.

◆메타버스 플랫폼 속 ‘또다른 나’에 열광하는 MZ세대
온라인 게임에서도 게임 콘텐츠 자체보다는 하나의 공간,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 주목받는 요즘 메인 콘텐츠나 스토리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 높은 자유도를 선사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에 MZ세대 유저는 열광하고, 기업은 가상세계로 사업을 확장하기 분주하다. 

네이버제트(Z)가 운영하는 증강현실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ZEPETO)’는 최근 가장 주목받는 메타버스 플랫폼이다.

2018년 출시 이후 약 2억명의 이용자를 보유한 제페토는 가상공간 맵을 구축하고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기능을 선보이며, 얼굴을 촬영하면 자신과 닮은 캐릭터를 자동 생성해주는 인공지능으로 유저들은 아바타를 꾸미고 다른 아바타들과 실시간으로 소통한다. 

제페토는 증강현실(AR) 콘텐츠와 게임, SNS 기능을 모두 담고 있어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플랫폼으로서의 기능을 하고 있다.

제페토 스튜디오의 ‘템플릿 에디터’ 기능으로 유저는 아바타의옷을 직접 디자인하고 공유할 수 있으며 구찌, 루부탱 등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은 제페토에 자신들의 컬렉션을 공개하기도 했다.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 [사진=네이버제트]
증강현실(AR) 아바타 서비스 제페토 [사진=네이버제트]

이용자들은 가상세계에서 명품 브랜드 옷을 입으며 대리만족을 하는 등 자신이 원하는 정체성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평소 명품 패션 브랜드에 관심이 많은 대학생 이유진(22)씨는 “현실에서는 너무 비싸고 구하기도 힘든 명품 가방을 합리적인 가격으로 아바타에게 사주며 대리 만족을 느꼈다”고 응답했다. 

◆가상과 현실, ‘나’의 균형을 지키기
우리는 왜 여러 개의 페르소나를 만드는 걸까? 상황에 따라, 기분에 따라 페르소나를 바꾸는 행위는 2030세대들에게 하나의 스트레스 해소 방법이자 나도 알지 못했던 ‘또 다른 나’를 만나고 알아갈 수 있는 과정으로 기능한다.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일상을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멀티 페르소나는 지친 삶과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하나의 탈출구가 되는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집에 머무는 시간이 대폭 늘어나면서 사람들은 점점 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일에 관심이 있는지 알아가고 싶어졌고, 그렇게 나의 다양한 면모들을 알아보겠다는 욕구들이 소비, 여가 생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영되고 있다. 

우리는 어디선가 열성적인 아이돌 팬이자, 학구적인 작가이자, 또 어딘가에서는 자유로운 음악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왼쪽부터) 김민강, 박현진 연세대 ISSU 학회원
(왼쪽부터) 김민강, 박현진 연세대 ISSU 학회원

메타버스가 주목받는 디지털 시대에서 ‘또다른 나’의 존재는 더 이상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넘나드는 가상세계에서 사람들은 또 다른 복수의 자아를 만들어내고 확장하는 세계와 함께 자신의 자아를 확장시켜간다. 

이는 현실의 내가 느끼는 불안함과 불만족이 주는 불안을 나타내기도, 자신이 보여지고 싶은 모습을 갖고 싶은 욕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멀티 페르소나 현상에는 단점 역시 존재한다. 오락과 대리 만족이라는 유희적 목적으로 사용되는 것을 넘어 멀티 페르소나에 집착하게 되면 현실을 잃게 될 위험이 있다. 

현실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또 다른 자아로의 도피만을 시도하다 보면 우리는 현실 속 자아를 영영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일상이 SNS와 가상세계에 구속돼 자기파멸적인 결과에 다다르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스스로 페르소나, 가면을 언제 벗을지 알아야한다. 

멀티 페르소나가 다중인격이나 정신분열증처럼 질환을 나타내는 부정적인 표현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상현실 속의 자아와 현실의 자아를 적절히 오갈 수 있어야 한다.

 

글: 연세대학교 언론홍보영상학부 김 민 강 /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박 현 진


“연세대학교 IT경영학회 ‘ISSU(Information System SIG of Undergraduate)’ 학회원 17명이 IT비즈뉴스(ITBizNews)와 2021년 2학기 동안 팬데믹이 견인한 경제사회 구조의 변화상과 IT기술이 제시하는 미래사회 키워드, 윤리적 이슈 등을 주제로 스터디를 진행했다. MZ세대 시선에서 보는 전망과 고민을 담고자 원본 그대로 약 2주간에 걸쳐 전달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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