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째 이어지고 있는 미국-중국 간 대결 전선이 확대되는 모양새다. 시작은 무역전쟁이었는데 이제는 데이터를 둘러싼 ‘디지털 냉전’으로 불이 옮겨 붙었다.
상대국 주요 IT기업의 자국 내 영향력 억제를 위해 법을 무기로 휘두르고 있는 것인데, 이는 경쟁을 통해 발전을 도모하고 글로벌 사용자들의 편의성이 높아져야 하는 방향을 역행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돼 우려가 적지 않다.
미국 하원은 지난 3월 중국 동영상 플랫폼인 틱톡을 미국에서 퇴출시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틱톡금지법을 의결했다. 미국 인구의 절반 이상인 약 1억7000만명이 이용하는 틱톡이 미국인의 개인정보를 중국정부에 넘기고 있다는 우려가 그 배경이다.
법안은 민주당과 공화당 공동으로 발의돼 찬성 325표, 반대 65표의 압도적인 결과로 통과됐다. 이어 상원까지 일사천리로 통과하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기다렸다는 듯 법안에 서명해 ‘확인사살’했다.
틱톡의 모기업인 중국 바이트댄스는 270일 이내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다른 기업에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렸다. 대통령이 단 한 차례 90일 더 연장할 수 있으나 틱톡은 주인이 기한 내에 바뀌지 않으면 더 이상 미국에서 서비스를 이어갈 수 없다.
물론 높은 확률로 예상되는 소송 절차를 고려하면 2026년 이전에 틱톡이 실제 퇴출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또 500억달러에 이르는 틱톡의 미국 사업권을 감당할 만한 기업도 많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조치로 인해 미중 간 디지털 냉전의 본격적인 신호탄이 울렸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중국 측은 “다른 사람의 좋은 물건을 보면 온갖 방법을 생각해 자기 것으로 삼으려는 강도의 논리”라고 맞대응하며 후속 조치를 예고하고 나선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렇게 반발하는 중국도 사실 딱히 할 말은 없는 처지다. 중국정부는 최근 애플의 중국 앱스토어에서 미국의 소셜미디어(SNS) 와츠앱과 스레드 등을 삭제하도록 명령했고, 애플은 이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이전부터도 중국은 인터넷 검열 시스템(만리방화벽)을 통해 수년 동안 외국의 메신저와 SNS 플랫폼의 사용을 막아왔다. 중국정부는 “보이스피싱 사기 등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라고 강조했지만 사이버 공간 전반에 대한 통제 강화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양국의 이같은 장군멍군식 대결은 공정과 정의의 기준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상 자국의 이권에 몰입한 결과라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정치권 전체가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는 모습을 과시하려 애쓰고 있다. 중국 역시 14억 인구를 통제하는 동시에 해외 플랫폼을 막아두고 자국 플랫폼의 성장을 이끌어 거대 시장을 독점하려는 포석이다.
틱톡 금지법으로 촉발된 디지털 냉전은 대상을 바꿔가며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영국의 한 매체는 이번 조치가 게임 ‘포트나이트’와 ‘리그오브레전드(LOL)’로 불똥이 튈지 모른다는 예측을 내놨다. LOL 개발사 라이엇 게임즈는 미국법인이지만 지분 100%를 중국 텐센트가 갖고 있으며 포트나이트를 만든 에픽게임즈는 텐센트 지분이 40%에 이른다.
중국시장에서 입지 확장에 공을 들이는 테슬라도 거론된다. 테슬라는 최근 일론 머스크 CEO가 방중해 완전자율주행(FSD) 소프트웨어 출시와 관련한 중국의 규제 통과를 이끌어냈지만, 데이터를 해외로 이전하기 위한 중국정부 승인 절차가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지난 2021년부터 테슬라가 중국에서 수집한 모든 데이터를 상하이에 저장하도록 하고 있어 데이터 해외 이전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적지 않다.
결국 핑계는 핑계를 낳고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불러오기 마련이다. 이 전쟁은 어느 한 쪽이 완전하게 굴복할 때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미국과 중국의 극한 대결로 피해를 입는 것은 사용자들이다.
삶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만드는 각종 기술과 서비스는 하루가 다르게 만들어지고 있지만 이를 누릴 수 있는 기회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글로벌 기술 경쟁이 아닌 정치적 갈등이 계속된다면 기술 자체의 발전도 그만큼 늦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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