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urce=pixabay]
[source=pixabay]

최근의 스타트업 트렌드는 단연 ‘초격차’다. 트렌드에 대한 스타트업씬의 예민함 수준이 수능을 앞둔 고3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유독 강력한 바람이 불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서 ‘핫한’ 스타트업이 되려면 의당 독보적인 기술력과 서비스를 갖추고 너도 나도 ‘따라올 테면 따라와 봐’라며 철지난 어느 광고의 카피를 읊조려야 할 것만 같은 분위기다. 그런데 이 트렌드, 정말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해외에서도 크게 이슈화되지 않았던 이 트렌드가 급부상하게 된 것은 사실 정부 주도의 ‘군불 때기’가 시작되면서였다. 스타트업 관련 주무부처인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해부터 ‘초격차 스타트업 +100’이라는 야심찬 구상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오고 있다.

시스템반도체,바이오·헬스, 미래 모빌리티, 친환경에너지, 로봇, 빅데이터·AI, 사이버보안·네트워크, 우주항공·해양, 차세대원전, 양자컴퓨팅 등 10대 분야를 선정하고 여기에서 독보적 기술력을 가진 스타트업 1천개사를 선발해 5년 동안 2조원 규모의 민관 공동자금을 쏟아붓는다.

여기에 정부출연연 등 초격차 분야별 기술전문기관이 스타트업을 밀착 지원해 기술완성도를 높이는 한편 각 부처의 연구개발과 인력육성, 인프라 등 관련 정책들도 연계해 지원한다.

또 투자유치와 글로벌 협업 등 성과가 뛰어난 상위 100개의 스타트업은 별도로 선발해 후속 스케일업 자금을 2년간 최대 10억원까지 지원한다. 

민간 투자를 촉진할 목적으로 1,100억원 규모의 ‘초격차 펀드’를 신설하고 해외 자본의 유입시킬 ‘글로벌 펀드’는 무려 8조원 수준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이와 같은 구상을 내놓은 정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국가 간 기술패권 경쟁이 격화되고 미국·유럽·중국 등 주요 기술 선도국들이 기술력 확보와 글로벌 시장 선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첨단 미래산업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과감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기술과 환경의 전환기에 대응해 국가의 미래성장동력을 확보하고 글로벌 신시장 선점의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 출범식' 현장 [자료사진=중기부]
지난달 24일 서울 마포구 호텔 나루 서울 엠갤러리에서 열린 '스타트업 코리아 펀드 출범식' 현장 [자료사진=중기부]

정부는 신산업 스타트업 현장에서 비즈니스 개척의 어려움을 계속해서 토로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성과를 내기까지 긴 기간 동안 막대한 비용이 필요한 신산업의 특성상 투자유치가 쉽지 않아 초기 자금조달부터 큰 장벽이며, 민간 투자시장에서 신산업의 중요성과 가능성은 인정하고 있지만 투자에 대한 부담이 컸기 때문에 연결이 쉽지 않았다는 것이다.

허나 이를 잘 살펴보면 어딘가에서 피어오르는 기시감을 억누르기가 쉽지 않다. 스타트업이 태동하고 산업의 한 축으로 떠오르던 2010년대 중반부터 이미 스타트업은 특유의 혁신과 창의성 그리고 남다른 역동성을 요구받아왔다. 거대 자본과 인력을 보유한 대기업·중견기업들과 경쟁하려면 뭔가 특별한 무기가 있어야 했기 때문에서다. 

초격차 스타트업 역시 전혀 다른 배경에서 만들어진 트렌드라고 하기 어렵다. 과거에 시도되지 않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방식으로 혁신을 추구하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과 서비스를 갖추고 특정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해 산업 자체를 재정의하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것이 최근 두루 통용되는 초격차 스타트업의 정의다. 10여년 전 움트던 스타트업의 정의와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찾아내기 쉽지 않다.

정부가 제시한 거창한 계획 또한 크게 다르지 않다. 매년 새로운 구상을 바탕으로 갖가지 지원책을 내놓기 위해 고민하는 점은 높이 살 일이지만, 정책적 지원의 효율과 효과에 대한 의구심을 지우기가 쉽지 않다. 

무엇보다 앞서 정부가 선정한 10대 분야만 살펴보더라도 개별 스타트업이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하려면 상당히 고도화된 기술력이 필요하다. 지원하는 자금 규모를 떠나 깊은 고민을 통한 촘촘하고 실질적인 정책적 지원이 요구되며, 특히나 단기적·단발성 지원은 효과를 기대하기에 한계가 뚜렷하다.

예나 지금이나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더 많은 지원’보다도 ‘장애물 제거’에 무게가 실려 있다.

격차를 벌릴 독보적 초격차 기술을 만들어내기 위해 손질해야 할 규제, 그러한 기술이 유출·악용되지 않게끔 보호받을 수 있는 안전망 같은 것들이다. 역사적으로 살펴보더라도 진정으로 성공한 정책은 빈 수레 요란하게 이뤄진 사례가 없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ITBizNew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