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측 불확실성 확대, 기상이변 늘면서 전력 보안 중요성 커져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전기 2025’ 보고서를 통해 2027년까지 전세계 전기 수요가 연평균 4%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매년 일본의 전력소비 규모인 3,500TWh가 전세계 전력 소비량에 추가된다는 것이다.
전력 증가를 주도하는 것은 중국과 신흥시장이다. 전력 수요 증가의 대부분(85%)이 개발도상국 등 신흥시장과 중국에서 발생한다는 것이 IEA의 예측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7%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전세계 전력 수요 증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중국은 2027년까지 연평균 6%, 인도는 연평균 6.3%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전세계 전력 수요 증가세를 선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남아시아 신흥국들도 전년비 7.4%의 증가율로 전세계 평균을 상회하면서 전력 수요 증가에 기여했다. 동남아에서 가장 큰 증가율을 보인 인도네시아와 베트남은 각각 전년비 11%, 10%의 증가율을 기록하면서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더해 지난 선진국의 전력 수요도 반등하고 있다. 지난 15년간 선진국들의 1인당 전력 수요는 유지 혹은 감소하는 현상을 나타냈다. 하지만 올해 미국과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등에서 전력 수요 증가가 확인된 데 이어 향후 3년간은 그동안의 추세와 달리 큰 폭의 성장이 이뤄진다는 것이 IEA의 전망이다.
조명·가전 등을 포함한 최종 제품의 에너지 효율성 향상, 중공업 생산기지 이전 등이 선진국 전력 수요를 유지, 혹은 감소시킨 원인이다. 이와 달리 전기차(EV)의 확산과 더불어 인공지능(AI)의 도래로 인한 데이터센터 확대 등의 현상으로 선진국에서도 전력 수요가 다시 반등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례로 중국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전력 소비국인 미국에서는 지난해 2%의 증가를 기록하면서 전력 수요가 반등했다. 2023년에는 미국 전력 수요가 1.8% 감소했지만, 데이터센터 부문의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증가세로 돌아선 것이다.
IEA는 향후 3년간 미국에서 연평균 2%의 전력 수요 증가를 예측했는데, 이는 미국의 총 전력에 매년 현재 캘리포니아주의 전력 수요가 더해지는 셈이다.
◆예측 불확실성 존재
IEA는 연평균 4%의 전세계 전력 수요 증가를 예측했지만 불확실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AI로 인한 산업 구조 재편 등 다양한 변동 요인이 존재한다는 설명이다.
전기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전세계 전력 수요 증가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의 경우, AI의 발전과 확산 수준에 따라 전력 수요가 크게 변동할 가능성이 높다.
최종 에너지 소비에서 전력이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면, 중국(28%)은 미국(22%)이나 유럽연합(21%)보다 높은 상황으로, 중국의 전력 소비는 2020년 이후 경제보다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AI는 이러한 전기화 추세를 더욱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정부의 예측에 따르면 지난해 100TWh에 도달한 중국 내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량은 2027년까지 2배로 증가가 예상된다. 최근 3년간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증가 기여율 3%에서 2배 이상 증가해 6%의 증가가 가능한 것이다. 그렇지만, AI 확산에 따라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변동폭이 클 것으로 지적된다.
전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은 AI 모델 ‘딥시크’는 전력 수요 예측의 불확실성을 보여주는 사례다.
딥시크는 저비용·고효율을 실현해 화제를 모았는데, 고성능 모델을 훈련하는데 세간의 통념보다 훨씬 적은 전력이 사용될 수 있음을 보여준 딥시크의 에너지 효율성은 기존 AI데이터센터 증설로 인한 수요 예측을 뒤흔드는 변수로 지목된다.
하지만 딥시크와 같은 에너지 효율 AI 모델이 비용을 줄여 AI 활용을 더 확산시킴으로써 AI 전력 수요 총량은 오히려 증가하게 만든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예측하기 힘든 AI 확산으로 인해 AI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 예측은 어려움이 컸는데, 딥시크의 등장이 이러한 난제를 더욱 심화시킨 것이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이 AI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계획하고 있다는 점이며, 여기에는 전력 수요 증가를 위한 에너지 확보 경쟁도 포함된다.
지난달 세계경제포럼(WEF)에 참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I가 원하는 만큼 커지려면 미국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에너지의 2배를 필요로 한다”며 “AI데이터센터용 발전소 건설을 위한 기업 요청에 신속하게 승인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국 에너지부는 지난해 말 데이터센터가 미국 내 전기 수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28년 최대 12%(6.7%~12%)까지 확대된다는 예측을 발표한 바 있다. 2023년 4.4% 수준에서 3배 가까이 증가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이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는 발전 용량 확대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재생에너지 확대 지속
IEA는 증가하는 전력 수요를 저공해 에너지원이 충족시킬 것으로 기대했다. 전력 수요 증가분을 위한 에너지를 태양광, 풍력, 수력 등의 재생에너지와 원자력으로 충당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재생 에너지는 올해부터 전세계 총 전력 생산량의 1/3을 책임지는 에너지원인 석탄보다 더 많이 활용될 것으로 예상되며, 특히 태양광 에너지는 2027년 전세계 전력 수요 성장의 약 절반을 책임질 정도로 빠르게 확대될 전망된다.
IEA에 따르면 지난해 2,000TWh를 생산하면서 전세계 총 발전량의 7%를 담당했던 태양광 발전량은 향후 3년간 매년 약 600TWh의 추가 전력 생산을 더하면서 전력 생산의 주요 에너지원으로써의 위상을 더욱 강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역별로 보면 EU에 이어 2027년까지는 미국, 중국, 인도 등도 태양광 발전 비중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릴 전망으로, 지속 확대되는 풍력과 함께 태양광 발전이 청정 재생 에너지의 전성시대를 이끌 핵심 요소로 주목된다.
IEA는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도 향후 2년간 지속 확산되면서 새로운 발전량 기록을 세울 것이라고 언급했다.
재생에너지가 지닌 발전량 변동성의 한계를 극복하는 원자력 발전의 안정적 전력 생산이 저공해 에너지 시스템의 안정적인 중추로 주목받으면서 원자력 발전이 새로운 성장 가도에 접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프랑스에서는 원자력 발전소의 전력 생산량을 회복시켰으며 일본도 원자력 발전소를 재가동하면서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면서 안정적 에너지 수급을 꾀하고 있다. 또 한국, 중국, 인도 등에서도 신규 원자로가 구축되면서 원자력 발전 시장이 강력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다만, 전세계 발전량의 이산화탄소(CO2) 배출량의 눈에 띄는 변화는 이뤄지지 않을 전망이다. 재생에너지 사용이 확대되지만,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신흥국에서는 급증하는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소와 같은 전통적 화석발전소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CO2 배출량에는 유의미한 변화가 없지만 많은 지역에서 저공해 에너지원이 확대되면서 전세계 석탄 화력 발전 비중이 향후 3년 이내에 33% 이하까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증가하는 기상이변, 전력 보안 대두
IEA는 이번 보고서에서 전력 보안의 중요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폭풍이나 폭염과 같은 기상이변이 광범위한 전력 공급 차질로 이어지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대형 겨울 폭풍으로 인해 대규모 정전사태가 발생했으며, 멕시코에서는 폭염이 수력 발전에 악영향을 미치면서 전력 수요 증가 시기에 공급 부족을 초래했다.
에콰도르, 콜롬비아도 엘니뇨 기상 영향의 영향으로 전력 공급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호주 역시도 폭풍으로 인한 송전 인프라 손상으로 대규모 정전 사태가 발생한 바 있다.
이러한 사례는 극한의 날씨가 전력 시스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탄력성을 높여야 하는 필요성을 보여준다. IEA는 기상 이벤트의 예측할 수 없는 특성을 고려해 전력 수요를 안정적으로 충족하기 위한 강력한 정책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편, 우리나라는 지난해 저공해 에너지가 전력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를 돌파한 것으로 조사됐다. IEA는 2027년까지 이 비중이 47%까지 높아질 것으로 전망하면서 전체 전력 공급에서 원자력이 차지하는 비중은 2024년 32%에서 2027년 34%, 재생에너지는 2024년 9%에서 2027년 13%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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