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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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가치 1조원의 비상장기업인 ‘유니콘’은 맨주먹 하나로 사업을 시작하는 대다수 스타트업의 꿈이자 궁극의 목적지다. 전설의 동물 이름을 빗댈 정도로 좀처럼 보기 어렵다는 의미가 숨어 있는데, 스타트업이 유니콘이 된다는 건 그만큼 진귀하고 대단한 사례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느새부터인가 곳곳에서 유니콘을 작정하고 만들어내겠다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이미 한국에서만 10개 넘는 유니콘이 등장한 터라 이제는 그 난이도가 만만해 보여서인지도 모르겠다. 

허나 공장에서 찍어내듯 유니콘을 만들어내는 식의 접근법이 옳은 방향인지, 또 그 과정이 생각만큼 수월할지는 재고해 볼 문제다. 유니콘이 많아진다는 게 국가적으로 스타트업 산업의 성장의 척도일 수 있겠으나 기업가치나 매출에 앞서 보다 건강하고 내실 있는 기업들이 많아지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중소벤처기업부는 지난달 인공지능(AI) 스타트업의 집중 육성을 위해 총 5조7000억원 규모의 정책대출과 보증을 시행한다고 밝혔다. 이는 최근 정부가 심의한 ‘AI스타트업 육성을 통한 AI 활용·확산 방안’에 따른 것으로, 중소기업 정책자금 중 60%에 해당하는 규모다.

제조 분야의 AI 기업을 키우기 위해 100개 기업에 기업당 최대 100억원 규모의 정책 자금을 융자·보증 형태로 공급한다. 아울러 2027년까지 정부·민간 자금 등 약 3조원 규모의 AI 펀드를 조성·운용해 AI스타트업에 자금을 공급할 계획이다. 

핵심은 이를 통해 3년 안에 중소기업의 AI 활용률을 50%까지 높이고 글로벌 AI유니콘을 최소 5개 육성한다는 것이다. 투입되는 자금 규모를 감안하면 그 돈으로 간신히 목표 유니콘 개수를 채우는 셈이다. 그나마 그것도 계획대로 잘 됐을 때 이야기다.

스타트업의 메카인 판교가 위치한 경기도에서도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경기도는 최근 ‘경기 스타트업 협의회’ 발대식을 갖고 글로벌 투자유치와 유망 스타트업 발굴·육성, 스타트업·앵커기업·투자자 간 협업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경기도 차원에서의 스타트업 협의회 출범은 이번이 처음이다.

협의회는 스타트업 정책 자문과 혁신 전략 수립, 오픈이노베이션 지원, 개별 스타트업 맞춤형 코칭 등을 통해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분과별 세미나 및 회의체 운영을 통해 스타트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트업의 성장을 지원해 나갈 계획이다.

이 자리에서 경기도는 앞으로 5년 동안 최소 20개 이상의 유니콘이 경기도에서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내놨다. 김동연 지사는 다보스 포럼 등에서 세계 각국의 유니콘 대표들을 만난 경험을 내세우며 경기도를 스타트업 천국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민간기업도 유니콘 만들기 열풍의 영향권에서 자유롭지 않다. KB국민은행은 최근 4년 동안 혁신 기술 스타트업을 지원해오고 있다. 경기창조경제혁신센터와 함께 IR 컨설팅과 TIPS 및 투자자 연계, 사무공간 무상제공, 기업 홍보, 우수기업 맞춤형 액셀러레이팅 프로그램 등 다양한 창업 지원이 그 핵심이다. 

이 프로그램의 이름은 ‘KB 유니콘 클럽’이고 목표는 기술 스타트업들이 유니콘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유니콘은 단순한 성공사례를 넘어 혁신의 상징이자 시장 변혁의 주역으로 여겨진다. 경제적으로 커다란 의미와 함께 국가적 동력원이 될 뿐만 아니라 미래 비즈니스 문화와 창업 생태계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고용 창출에서부터 산업 혁신, 국가 경쟁력 강화 등 다방면에서 영향을 가져오며 창업가들에게 영감과 통찰을 선사함으로써 스타트업의 경쟁과 발전을 유도한다. 이러한 상황이니 국가적으로 유니콘 만들기에 혈안이 되는 것 또한 충분히 수긍이 가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디테일의 섬세함을 조금 더 고민할 필요가 엿보인다. 주무 부처나 주요 지자체, 덩치 큰 대기업들이 책임감을 갖고 나서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이들은 대체로 과정보다는 목표 달성에 지나치게 집착한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과거 개발 시기의 유산인 정치적 행정적 성과 과시에 길들여진 탓이다.

이보다는 혈세를 낭비하거나 오용하지 않도록 적재적소에 자금을 투입하고 효과를 도모하는 방향을 더 깊게 모색해야 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스타트업들이 현장에서 무엇을 필요로 하고 무엇에 어려움을 겪는지 그들의 볼멘소리를 들어가며 정책을 고민하고 집행해야 한다. 

그럴싸하게 들리는 ‘유니콘 몇 개 육성’ 같은 구호가 아니라 스타트업의 안전망이 되는 것이 먼저다. 누군가는 여전히 그 시대에 살고 싶은지 모르겠으나 개발 중심의 산업화 시대는 막을 내린 지 너무도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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