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정부, SVB 매각 실패시 비보험예금도 보호 추진
미국 내 16위 대형은행인 실리콘밸리뱅크(SVB)가 파산했다. 이 은행은 캘리포니아주 산타클라라에 본사를 두고, IT·테크기업을 주 고객으로 활동해 왔다. 미국 서부 스타트업들의 주요 자금원으로 2016년에는 시장 점유율 기준 미국 최대은행으로 승승장구했던 SVB는 단 이틀 만에 파산에 이르게 됐다.
8일(미국 현지시간) SVB는 18억달러 규모의 손실과 22억5000만달러의 자금조달의 필요성을 알렸는데 이 발표 이후 SVB의 현금 유동성에 대한 불안을 가져왔으며, 뱅크런이 일어나면서 10일 캘리포니아주 규제당국이 SVB 폐쇄와 자산압류를 결정하는데 이르게 된 것이다.
SVB의 파산의 직접적인 원인은 급작스러운 뱅크런이다. 유동성 우려가 제기되면서 고객들이 예금을 앞다퉈 인출하면서 지불 불능 상황이 발생한 것이다. CNBC에 따르면 9일까지 SVB에서 빠져나간 예금은 420억달러(약 55조5000억원)에 달하며, 9일 은행 업무 종료 시 현금 잔고는 -9억5800만달러에 달했다.
SVB 파산의 직접적 원인은 뱅크런이지만, 보다 궁극적인 배경은 미 연준의 고금리 정책이 지목된다. 코로나 팬데믹이 디지털에 대한 관심을 높이면서 기술 기업들에게 투자가 집중됐으며, SVB에게는 풍부한 유동성을 가져왔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연준이 40년만에 가장 가파른 고금리 정책을 펼치면서 시장의 자금이 마르는 가운데 SVB는 국채 투자에서 큰 규모의 손실을 기록하면서 불안감을 키웠다.
여기에 암호화폐 기업들의 파트너 역할을 하던 실버게이트가 파산에 따른 벤처캐피털(VC)의 자금이동이 더해지면서 예금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유동성 위기에 대한 공포감이 뱅크런을 촉발시키면서 스노우볼을 굴린 것이다.
실리콘밸리의 긴밀한 투자자 커뮤니티가 파산의 악영향을 더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고도로 연결된 투자커뮤니티에서 지목된 SVB 유동성 우려가 일파만파로 퍼지면서 VC들이 앞다퉈 예금 인출에 나섰으며, 이것이 유동성 문제를 더욱 크게 부풀리고, 단기간의 파산까지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SVB의 이번 파산은 VC들의 유동성 공포에 대한 ‘자기충족적 예언’의 결과라면서 “실리콘밸리의 투자업계의 얼굴을 찡그리기 위해 코를 자른 사건”이라고 혹평하기도 했다.
관건은 시장 파장이다. 실리콘밸리의 자금줄 역할을 했던 SVB의 파산이 테크 스타트업들의 줄도산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는 물론 실버게이트에 이어 또다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원하던 은행이 파산함으로써 금융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시장 불안이 높아진다는 의견 등 적지 않은 악영향이 우려되고 있다.
SVB에 예금이 묶인 스타트업들이 직원 급여나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산업 전반으로 파장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또 벤처투자자의 자금 조달에 실패하는 등 산업 전반의 자금 경색이 더욱 심각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연방정부의 신속한 개입을 요구하고 있다. 빠른 대응으로 시장의 불안 확산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재닛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구제금융을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튼튼하며, 풍부한 자본을 갖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같은 자신감에도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SVB의 매각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를 마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12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 보도에 따르면, 미 연방정부는 예금보험 대상이 아닌 모든 SVB 예금을 보호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 중이다.
WP는 이 사안을 잘 아는 복수의 소식통을 인용해 “재무부, 연방준비제도(Fed),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지난 주말 이러한 방안을 논의했다”고 보도했다.
아시아 금융시장 개장을 앞둔 상황에서 백악관 역시 이러한 구상을 검토 중이라고 2명의 관계자가 WP에 전했다. 한 소식통은 WP에 “그들(재무부/Fed/FDIC)은 모든 비보험 예금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정치적으로 합리적인 길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CNN은 FDIC를 인용해 지난해 말 기준 미국 은행들의 미실현 손실이 6,200억달러(약 820조2500억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미실현 손실은 자산가치가 하락했지만 아직 매각되지 않은 자산으로, 대부분 연준의 고금리 정책 전환 이전 사들인 장기국채로 인해 발생했다고 알려진다.
강도높은 고금리 정책이 시행되면서 은행들이 풍부한 현금의 안정적 투자처로 선호했던 장기국채의 가치가 폭락하면서 막대한 손실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미실현 손실액이 금융위기를 가져올 수준은 아니라고 CNN은 전했다. 장기국채는 안정적 자산으로 매각할 필요가 없으며, 만기보유시에는 손실될 수 없는 자산이다.
문제는 대차대조표의 급격한 하락으로 이를 매각해야 해 손실을 확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테크 업계의 자금경색으로 예금 인출이 증가하면서 손실을 확정해야 했던 SVB와 달리 미국 대형 은행들의 재정상태는 양호하며 장기채권 손실을 확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다.
실제로 미국 대형 은행들의 주가는 SVB 위기가 알려진 9일 폭락했지만, 10일에는 하락을 멈추고, 안정세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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