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논의가 이어져 온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가 국내 자본시장에 도입된다. BDC는 자산 총액 중 일정 비율을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펀드로, 주식시장에 상장돼 개인 투자자들이 자유롭게 투자할 수 있다. 유니콘이지만 비상장이었던 기업에 직접적인 투자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벤처캐피탈(VC) 업계에서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할 새로운 기회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실제 시행 단계에서 보완해야 할 점도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는 지난달 말 본회의를 열고 BDC 도입을 골자로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가결 처리했다. 지난 정부 도입이 추진됐지만 당시 야당이 투자자 보호를 이유로 반대하면서 무산된 바 있다. 사모펀드의 진입 장벽을 낮춘 이후 라임자산운용 사태가 발생했다는 점이 그 근거였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공약으로 내세우고 여야 정치권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합의에 이르면서 새 정부에서 도입이 마무리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VC를 비롯해 자산운용사·증권사 등은 공모를 통해 펀드를 결성하고 벤처기업과 혁신기업에 투자하게 된다. 계약 기간 내에 환매는 어렵지만 상장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투자자들이 필요 시 자금을 회수할 수 있다.
사모펀드처럼 차입과 대출이 가능하면서도 자산 총액의 10%는 안전 자산에 투자하고 동일 기업의 투자 한도 규제가 적용되는 등 안전장치가 없지 않다.
활로를 모색 중인 VC와 스타트업 업계에서 환영의 목소리가 나온다. VC는 정책금융 위주의 벤처투자 자금을 민간에서 조달할 수 있게 됐고, 기업 입장에서는 후속 투자를 중단 없이 유치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됐기 때문이다. 스케일업 과정부터 기업공개(IPO)까지 발생하는 투자 공백을 메울 수 있는 기회가 생긴 셈이다.
현재 VC들은 경기 침체와 금리 고공행진 속에 자금 회수에 실패하며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는 자금을 공급하는 기관의 신규 출자에도 악영향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새 정부 출범에도 경기 회복의 기대 심리는 그리 크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번 BDC 도입이 시사하는 바는 작지 않다.
사모펀드 성격인 벤처펀드에 비교하면 앞으로 상대적으로 펀드레이징이 수월해질 것이란 데는 이견이 없다. 대선 공약을 거쳐 새 정부 초기에 도입된 터라 정부 차원에서의 직간접적인 지원사격도 기대할 수 있다. BDC가 연착륙 수순에 들어서면 BDC를 전문으로 하는 운용사가 등장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장밋빛 전망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IPO 시장이 그 무대가 되는 만큼 VC 입장에서 공시에 대한 높은 이해도를 갖춘 전담 조직과 시스템 구성이 요구된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VC의 경우 이같은 제반 준비부터 부담이 따를 수 있다. 덩치가 있는 VC 역시 공모펀드 운용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많아 BDC 운용의 난이도가 낮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투자 대상이 되는 비상장 스타트업의 공정 가치를 산정하기 위한 방법과 기준을 마련해야 하는 것도 숙제다. 또 투자처가 확정돼 있지 않다는 점에서 개인 투자자들에게 매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상품 경쟁력이 ETF보다 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자산운용사와 VC가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꾀하는 방법도 거론된다. 자산운용사의 공모펀드 운용 경험과 VC의 비상장 스타트업 딜 소싱 역량이 결합된 형태다. 이 때문에 자산운용사나 증권사를 보유한 금융그룹이 강세를 나타낼 것이란 관측도 있다.
BDC가 담긴 자본시장법 개정안 자체의 보완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현재 순자산을 기반으로 금전을 차입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데, 여유자금이 부족한 상황에서 차입이 허용되지 않으면 추가 자금조달은 기존 포트폴리오 회수가 사실상 유일한 방법이다.
BDC가 스타트업의 전 생애주기를 지원하기 위해서는 차입이 허용돼야 한다는 것인데, 일각에서 우려하는 도덕적 해이와 부실화 등은 차입 목적·한도·공시 등에 대한 규제를 통해 통제가 가능하다는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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