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M 독과점 우려 속 RISC-V 부상
삼성·퀄컴·인피니언 등 리스크-V 접근 확대
차량용 반도체(전장반도체) 생태계에서 리스크-V(RISC-V)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달 현대자동차가 RISC-V 기반 AI반도체 개발 스타트업 텐스토렌트의 1억달러 규모 펀딩에 참여한 데 이어 노르딕세미컨덕터, 보쉬, 인피니언, 퀄컴, NXP반도체 등 5개 기업의 RISC-V 반도체 합작회사(JV) 설립 계획 발표소식은 이를 뒷받침하는 주요 사례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RISC-V를 주목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차량 내 전자장치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완성차 1대당 사용되는 반도체 제품의 비중은 계속 증가하고 있다. 이는 곧 차량 제조 시 반도체 비용 증가를 의미한다.
IC인사이츠에 따르면,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량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8.5% 수준에서 2026년에는 9.9%로 확대될 전망이다. 옴디아는 전세계 차량용 반도체 시장 규모가 지난해 635억달러(약 85조원)에서 오는 2026년에는 962억달러(약 129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으로 전망했다.
최근의 전기차(EV) 생산-보급 확대 추세, 나아가 다가올 자율주행차 시대에서는 반도체의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하며 이에 따른 반도체 비용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하게 된다.
실제로 현재 차량 생산 원가 중 차량용 반도체가 차지하는 비중은 2% 수준에 불과하지만, 향후 기술 레벨3(L3) 이상의 자율주행차의 경우에는 이 비중이 6% 이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비용 절감은 완성차 업체를 비롯한 관련 부품사 등 관련 플레이어들이 주목하는 화두다.
RISC-V는 2010년 미국 UC버클리대학교에서 개발한 오픈소스 RISC 명령어셋 아키텍처로, 무료로 활용할 수 있어 비용을 크게 줄여준다는 이점을 제공한다. UC버클리는 RISC-V를 BSD 라이선스로 배포했는데, 무료 사용 뿐 아니라 수정·배포에 대한 제한도 거의 없다.
따라서 자동차 산업 뿐 아니라 사물인터넷(IoT), 통신, 모바일, 인공지능(AI), 고성능컴퓨팅(HPC), 데이터센터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높은 관심을 받아 왔다.
◆RISC 아키텍처 최강자 ‘ARM’의 라이선스 정책 변화
최근 자동차 생태계에서 RISC-V의 부상은 ARM을 빼놓고 말할 수 없다. 최근 ARM의 반도체 설계자산(IP) 라이선스 정책 변화에 대한 소식은 RISC-V에 대한 기업들의 관심을 증대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ARM은 40% 이상을 점유하는 반도체 IP 시장 최강자다. 특히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시장에서는 삼성, 애플, 퀄컴 등 유수의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이 ARM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스마트폰 AP를 설계·생산하면서 점유율이 90%를 넘어서는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역할하고 있다.
문제는 스마트폰 반도체 IP를 ARM이 독점함에 따라 이에 대한 경계감도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ARM의 행보에 따라 시장 생태계가 뒤흔들리는 시장 교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되는데, 최근 ARM이 기업공개(IPO)와 함께 급격한 IP 라이선스 변화를 추진하면서 이러한 우려가 불거지고 있다.
이와 관련한 대표적인 사례가 3월 파이낸셜타임즈 보도로 알려진 최종 생산 기기의 평균판매가격(ASP) 비율로의 ARM IP 라이선스 정책 변화다.
ARM은 시스템온칩(SoC) 개발 기업에게 생산 SoC당 라이선스를 청구했는데, 이를 최종 제품의 ASP에 대한 비율로 변경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라이선스 정책 변경은 이익률을 끌어올림으로써 IPO에서 기업 가치 평가를 극대화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이를 처음으로 보도한 파이낸셜타임즈는 현재 ARM이 스마트폰 SoC에서 얻는 이익보다 스마트폰 ASP가 훨씬 높다는 점을 고려하면, 라이선스 정책 변화만으로 판매된 각 디자인에 대해 현재보다 ARM이 몇 배의 수익을 올릴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변화가 곧 ARM 아키텍처에 기반 최종 기기의 가격 상승을 가져오고, ARM 아키텍처 이용 기업들의 비용부담으로 이어져 관련 기업들이 크게 반발하고 있다는 것이 보도의 주요 내용이다.
일각에서는 급작스러운 IP 라이선스 변경이 ‘ARM의 시장독점 가치에 대한 테스트’라고 평하기도 한다. 동일한 제품에 대해 고객에게 더 많은 비용을 요구함으로써 대체불가능한 독점이 지닌 실질적 가치를 확인하고, 이를 현실의 이익으로 상환하려 한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지난해 시작된 퀄컴과 소송전도 ARM 독점에 대한 경계감을 높이는 요인이 되고 있다.
ARM과 퀄컴은 누비아 인수로 퀄컴이 확보한 ARM IP 라이선스 계약의 유효성이 소송전의 원인으로, 이 과정에서 ARM이 타 팹리스 업체에 대한 라이선스 제공을 중단하고 ARM IP 활용 시 다른 회사 IP의 혼합 사용을 금지하려 한다는 주장이 불거지기도 했다.
ARM CPU를 사용할 경우, 퀄컴의 ‘아드레노’나 AMD ‘라데온’ 등을 사용하지 못하고 ARM의 GPU인 ‘말리’까지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벤더종속(lock-in)을 심화시킬 뿐 아니라 각 요소에 다양한 IP를 취사선택해 SoC 기업들의 차별화 요소를 제거해 단순 제조로 격하시키고, 업계 전반의 혁신을 지연시킬 것이라고 비판받는다.
ARM은 이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았지만, 일부 고객사에 이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이러한 폐쇄적 라이선스 운용은 미국, 유럽 등에서 독과점금지법, 혹은 반경쟁법 규제 대상이 될 수 있어 실행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분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폐쇄적 라이선스 전환에 대한 의구심은 계속되고 있다. 이는 ARM 독과점에 대한 업계의 경계감이 팽배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최근에는 모바일 기기, 노트북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ARM 코어를 활용한 자체칩 개발을 위해 솔루션 엔지니어팀을 강화하고, 프로토타입칩 개발에 나섰다는 소식도 전해지면서 업계를 긴장하게 했다.
이러한 ARM 경계감의 반작용으로 오픈소스인 RISC-V가 주목을 받았고, 이를 기반으로 하는 개방형 생태계 확산의 주요 산업군이 데이터센터 분야와 함께 차량용 반도체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오픈소스 이점으로 합작사·파운데이션 발족 활발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에도 저전력과 전력효율성이 중요한 요소로, 이에 강점을 지닌 ARM 아키텍처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하지만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ARM IP는 스마트폰과 같이 독점적 시장 지배자의 막강한 지위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아가 ARM이 개별 SoC가 아닌 완제품 ASP를 기준으로 라이선스를 변화시킬 경우, 높은 ASP를 지닐 뿐 아니라 향후 반도체 사용량이 더 증대될 자동차 산업에게는 큰 부담이 된다.
따라서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서 ARM의 대안이 될 수 있는 RISC-V에 대해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노르딕세미컨덕터, 보쉬, 인피니언, 퀄컴, NXP반도체 등이 출범시킨 RISC-V 개발 합작기업(JV)도 첫 번째 공략 목표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제시했다.
인피니언, NXP 등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MCU) 제조기업이 포함된 합작사는 우선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 집중해 RISC-V 레퍼런스 아키텍처를 개발하고 모바일과 IoT 분야로 RISC-V 기반 아키텍처를 확장시킨다는 전략이다.
텐스토렌트의 1억달러 규모 전략적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현대차의 행보도 의미심장하다. 텐스토렌트는 RISC-V 기반 반도체 IP 기업이다. 현대차는 이번 투자에서 삼성카탈리스트펀드(SCF)와 함께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텐스토렌트는 LG전자와 올해 5월 협력을 발표하기도 했다. LG전자가 차세대 먹거리로 차량용 전장사업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협력은 LG전자가 텐스토렌트로부터 프리미엄TV와 차량용 반도체에 활용될 수 있는 RISC-V 기술을, 텐스토렌트가 LG전자의 비디오 코덱 기술을 제공받고 이를 기반으로 기술 로드맵을 공유하면서 미래 TV와 차량용 칩렛의 개발·테스트·배급에 공동 노력을 전개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외에도 모빌아이가 RISC-V를 기반으로 아이Q울트라(EyeQ Ultra)라는 자율주행차(AV)칩을 지난해 CES에서 공개하고, IAR(구 IAR시스템즈)가 지난해 RISC-V 기반 반도체 IP 기업 사이파이브(SiFive)의 오토모티브 CPU IP에 대한 지원 확대를 밝히는 등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RISC-V에 대한 접근이 증가하고 있다.
IAR은 일본 완성차 티어1 덴소의 자회사로 전장반도체 개발에 집중하는 엔시텍스(NSITEXE)와 RISC-V 기반 전장 애플리케이션 개발에도 협력하고 있기도 하다.
◆기술 완성도·신뢰성 인증 등 해결할 과제도
차량용 반도체 시장에서 RISC-V 확산의 전제조건은 기술적 완성도다. 비용적 측면에서 우수성을 갖고 있다고 해도 기술적 완성도가 떨어진다면 시장 확산은 불가능하다.
이론적으로 RISC-V는 ARM 아키텍처보다 더 작은 명령어로 구성돼 전력효율성 측면에서 더 우수하며, 칩 면적도 더 작아 소형화에 유리하다.
무엇보다 BSD 라이선스로 비용부담 없이 CPU 코어를 개발하고, 각종 소프트웨어도 제약없이 개발·배포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최근 CPU 성능 측면에서도 AMD 64, 인텔 E7, ARM 기반 삼성 엑시노스 등을 뛰어넘는 RISC-V 기반 반도체가 등장하고 있어 기술적 완성도까지 상용화 가능 단계에 들어섰다고 평가된다.
실제로 애플, 테슬라 등의 빅테크 기업들도 자체 반도체 설계에 RISC-V를 ARM IP와 함께 일부 사용하는 등 활용 확대가 이뤄지고 있다. 아이Q울트라 또한 ARM IP와 RISC-V를 혼용한 형태로, 차량용 AP 팹리스에서도 ARM, RISC-V IP 혼용을 확대되고 있는 상황이다.
다만 파편화는 RISC-V의 해결과제로 꼽힌다. 올해 5월 말 리눅스재단이 발족한 RISC-V 소프트웨어개발프로젝트 ‘라이즈(RISE)’의 역할이 주목받는 이유다.
삼성전자를 포함해 구글, 레드햇, 인텔, 엔비디아, 퀄컴, 등 글로벌 IT·반도체 기업이 참여하고 있는 라이즈는 RISC-V를 기반으로 상용 소프트웨어를 시장에 신속하게 제공하기 위해 출범한 조직이다.
생태계 활성화는 물론 일관되고 안정적인 공동의 소프트웨어 개발 기반도 확보되도록 해 RISC-V의 단점으로 지목되는 파편화 현상 해소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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