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EV) 성장 속 美 배터리 투자 가속
대중압박에도 반도체로 건재 과시, 광물 자원화 나서나
미국의 배터리 투자가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에 힘입어 미국의 전기차(EV)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까닭이다. EV 확산은 막대한 배터리의 수요를 견인하며, 배터리 생산을 위한 신공장 설립이 뒤따르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세계 등록 전기차(PHEV 포함)는 616만1000대로 전년동기비 42% 증가했으며, 특히 순수전기차로 불리는 배터리 기반 전기차(BEV)는 전년동기비 100% 성장했다. 특히 BEV 성장에는 미국 시장의 BEV 급증세가 원동력이 된 것으로 분석된다.
카운터포인트의 조사에서도 글로벌 EV 판매는 1분기 전년동기비 32% 늘었고 2분기에는 50% 이상의 성장을 달성하는 등 견고한 성장을 이뤄냈다. 이 가운데 미국 BEV 판매는 1분기 전년동기비 79%, 2분기 전년동기비 57% 증가하면서 성장세를 견인했다. 이에 힘입어 미국은 독일을 제치고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BEV 시장으로 올라섰다.
배터리 수요처인 EV 확대에 더해 미국정부도 EV 핵심 공급망 구축을 위해 적극적으로 배터리 투자를 유도하면서 배터리 생산 기반 확충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제정된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은 미국정부의 배터리 공급망 확보 의지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사례다.
IRA는 친환경 EV 생산·판매 촉진을 위해 다양한 인센티브를 포함하고 있는데, 미국 내 배터리 제조업체는 셀당 kWh당 35달러의 세금을 공제받아 생산 비용을 1/3 가량 절감할 수 있다. 70kWh 배터리 100만대분을 생산할 경우, 24억5000만달러의 세금공제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미국 내 배터리 공장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테슬라가 올초 네바다주 공장을 확장해 연간 100GWh의 배터리 셀 생산 계획을 발표하고, 포드가 SK온과 협력해 SK온과 합작회사를 설립해 미국 내 3개의 배터리 공장 건설 계획을 발표하는 등 신규 배터리 공장 발표가 이어지고 있다.
SK온과 포드의 배터리 공장 신설에는 미국 에너지부(DOE)가 대출 형태로 92억달러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기도 했다.
댈러스연방준비은행은 지난해 10월 2021년 이후 미국 내 배터리 생산과 관련된 투자 금액이 400억달러 이상에 달한다고 밝혔는데, 이후에도 투자 발표가 이어지면서 현재는 770억달러 이상으로 높아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에 향후 10년간 배터리 관련 리베이트 비용이 1,300억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고 있다.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에 따르면, 미국 내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량은 2026년에는 2021년보다 5배 이상 증가하고 향후 2031년까지 86%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전세계 리튬이온 배터리 시장에서 미국의 비중을 2021년 5.5% 수준에서 2031년에는 11%까지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따른다.
◆첨단산업 대중압박에도 고민하는 미국정부
미국정부의 적극적인 배터리 산업 지원 정책은 중국과의 기술 패권 경쟁의 일환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분야에서 대중국 제재를 단행한 것처럼 미래 핵심산업으로 꼽히는 배터리 산업의 공급망에서 중국의 영향력 확대를 경계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배제 의지는 IRA 내 배터리 지원 조건에서도 드러난다. IRA에서는 배터리 제조 시 사용되는 핵심광물의 최소 40%(2027년 80%)를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국가 내 채굴 가공 제품 사용을 보조금의 조건으로 명시하고 있다.
특히 배터리 제조에 사용되는 희귀광물 또는 부품이 중국, 러시아, 북한, 이란에 의해 소유·경영되는 ‘우려 외국 집단’에 의해 채굴·생산되는 경우, 혜택에서 제외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국이 주도권을 갖고 쫓아오는 중국을 견제하는 반도체 분야와 달리 배터리 분야에서는 중국의 위상이 앞선다. 보다 빠르게 EV 확대에 나선 중국이 세계 최대의 시장 수요를 바탕으로 미국보다 앞선 모습을 보이고 있다.
리튬, 코발트 등 배터리 핵심광물의 채굴·재련에서부터 배터리 셀과 팩 제조까지 미국보다 중국의 위상이 더욱 크다.
미국의 EV 시장 최근 급속 성장했지만 중국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EV 시장의 위치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다. 보조금 축소, 충전요금 인상 등으로 인해 성장률이 감소했다고 평가받는 2분기에도 전세계 EV 판매 중 중국시장의 비중은 절반 이상(56%)에 달하며, 배터리 생산능력도 전세계 다른 모든 국가를 압도하고 있다.
일례로 13개 제조기업이 전세계 글로벌 EV 배터리 생산의 70%를 책임지고 있는데, 이 중 7개가 중국기업으로 배터리셀 생산량의 70%가 중국에서 생산되고 있다고 추정된다.
벤치마크미네랄인텔리전스의 예측에 따르면, 미국의 EV 배터리 생산 역량이 확충되고 있지만, 중국의 생산 능력은 2021년부터 2031년까지 약 486% 증가해 2031년에도 다른 모든 국가보다 높은 역량을 보유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EV 배터리 기업들은 보다 낮은 가격의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분야에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LFP 배터리는 낮은 가격이 강점으로 EV 시대를 앞당길 저렴한 보급형 모델 출시에 필수적이라고 평가받고 있으나 LFP 배터리 분야에서는 중국기업의 강점이 뚜렸한 분야다.
중국 내 수요를 바탕으로 공급망의 수직계열화를 이뤄내면서 강력한 가격경쟁력을 지닐 뿐 아니라 LFP 배터리에 대한 지속적 연구개발을 통해 LFP 배터리 분야에서는 보다 앞선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힘입어 CATL, BYD 등 중국 기업들이 EV용 LFP 배터리 시장의 80% 가량을 과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EV 확산을 위해서는 중국 배터리 기업을 외면하기 어려운 이유다.
◆반도체 기술로 건재 과시한 중국, 광물 자원화 카드 꺼낼까?
최근 이뤄지고 있는 중국 배터리 기업의 미국 배터리 투자 참여는 배터리 분야의 미묘한 상황을 보여준다. 이달 초 다임러트럭, 커민스, 파카 등 3사는 약 30억달러 규모의 배터리 생산 합작회사(JV)를 발표했는데, 이들 3사 외에도 중국 이브에너지가 10%의 지분을 갖고 함께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궈시안도 20억달러를 투자해 미국 일리노이주에 배터리 생산 공장을 신설한다고 블룸버그가 보도했으며, CATL은 포드의 미시간주 배터리 공장에 라이선스 기술을 제공해 미국 배터리 시장에 접근하고 있는 모양새다.
합작투자는 IRA를 우회한 "중국기업의 미국시장 침투"로 해석될 수 있다. 실제로 실제로 라이선스 참여 형태의 CATL과 포드의 합작에 대해 IRA 보조금의 편법 활용이란 의혹이 제기돼 미국 의회가 조사에 나선 상황이다.
하지만, LFP 배터리 노하우를 갖춘 중국 배터리 기업의 없이 저렴한 보급형 EV의 생산이 요원하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
원료 부분에서도 중국의 영향력은 크다. CRU그룹에 따르면 전세계 코발트, 흑연 채굴량 중 41%, 78%가 중국에서 채굴되며 리튬 28%, 니켈 6%, 망간 5% 등도 중국을 생산지로 한다. 이들은 모두 배터리의 필수 원료들이다.
가공에서의 영향력은 더 커 망간의 95%, 코발트의 73%, 흑연의 70%, 리튬의 67%, 니켈의 63%가 중국에서 정제된다. 배터리 핵심소재인 음극재·양극재의 전세계 공급량의 75%가 중국에 의존한다는 보고도 있다.
또 미국, 유럽연합(EU) 등이 정책적 지원을 통해 리튬과 같은 핵심광물 생산·재련 역량을 확충하고 있지만 배터리 공급망에서 중국을 완전히 대체하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예상된다는 점도 IRA 우회 시도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없는 요인으로 평가된다.
EV 등 친환경차가 2030년에는 미국 내 판매 차량의 50%를 차지할 수 있게 하겠다는 미국정부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중국이 필요하다는 딜레마다.
최근 중국은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미국의 공세에 보다 적극적 반격을 모색하는 모습이다.
중국 국가 공무원의 애플 아이폰 사용 금지를 공공기관과 기업으로 확대한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으며, 이러한 가운데 화웨이는 중국의 파운드리 기업 SMIC에 위탁 생산한 7나노(nm) 공정기술이 적용된 자체 개발 프로세서 칩으로 새로운 5G 프리미엄 스마트폰 ‘메이트60프로’를 출시하기도 했다.
화웨이와 SMIC는 모두 미국 상무부의 반도체 거래제한 리스트에 등재된 기업이다. 메이트60프로 출시는 반도체 핵심장비·제품과 관련한 대중 제재를 이어가고 있는 미국에 대한 무력시위라는 말도 나온다.
메이트60프로 출시로 미국이 대중 반도체 제재를 더욱 강화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는 상황에서 중국정부가 광물 원에 대한 수출 규제로 대응할 수 있다는 전망도 제기된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지난달 갈륨과 게르마늄에 대한 수출 제한한 중국은 이달 초 수출통제 업무회의를 개최하면서 자원 무기화를 압박한 바 있으며, 다음 수출 통제 품목으로는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배터리 관련 품목이 유력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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